옳은 이야기 둘

낙농의 나라의 놀이터

by 칼럼니스트 박지원
게시글 공유하기
세상을 두루 두루 다녀보니, 그 사회의 됨됨이와 미래를 놀이터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도 없다.
한 두어 시간,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눈이 떠지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각 나라별로, 그 나라의 놀이터에서 내가 받은 인상과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한국의 경우 놀이터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정작 오갈 데 없고, 흡연 구역이거나 혹은 노인정으로 변해버렸다.
그럴바엔, 놀이 기구 대신 나무나 더 심고 쓰레기통이나 더 배치해야 할 듯하다.
 
프랑스에는 아이들끼리 놀도록 풀어 놓고 간간이 지켜보며 하이힐에 멋지게 차려 입은
파리지엥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정치, 스캔들, 애완견, 모드에 대해 수다를 떤다.
혹여 다른 아이가 자기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얼른 달려가 빼앗아 자기아이에게 돌려준다.
 
독일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과 놀아주느라 바쁘다.
현역에서 밀려 난 세대인 그들의 남는 시간과 여력을 아이들이라는 미래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하지만 프랑스와는 달리 장난감을 뺏은 아이의 부모가 먼저 주인에게 돌려주며 사과를 한다.
그러나 정작 장난감을 뺏긴 아이의 부모는 웃으며 괜찮다고, 나중에 돌려만 달라고 한다.

이런 저런 나라들 중에서 내가 정말 감동했고 미래의 희망까지 보게 된 곳은 암스텔담이다.
어느 날, 2살이 채 안된 루까가 모래 더미 위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그때 열 살 남짓 어린 아이들 몇몇이 다가와 루까에게 말을 걸길래 궁금해진 내가 다가가자,
그 아이들은 나에게 영어로 이 아이의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 물었고 나는 영어로 대답해 주었다.
네덜란드는 TV 영어 프로그램을 영어로 방송해서 국민 전체가 거의 영어를 하며 어린 아이들도 특별한 교육 없이도 기초 영어를 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기 루까가 너무 귀엽다며 같이 놀아도 되겠냐고 나에게 허락을 구했고
나는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마치 형제처럼 루까에게 그네도 태워주고 미끄럼도 밀어주고 숨바꼭질도 가르치며
해가 넘어 갈 무렵까지 놀아주더니 다음에 보자며 사라진다.
그런 모습은, 약한 아이를 골라 왕따를 일삼는 우리 나라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어릴 때부터 나눔과 봉사, 헌신, 어린 생명에 대한 사랑이 어린 나이부터 성장 호르몬에 내재되는 것 같다.
놀이터 한 켠에는 두 평 규모의 나무 박스나 오두막 등이 비치되어 사람들은
쓰던 장난감이나 자전거들을 갖다 놓고 놀이터를 찾는 아이들이 누구나 함께 쓸 수 있게 해 놓았다.
혹여 준비없이 가도 놀 거리, 놀 친구는 언제나 넉넉하다.
놀이터에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은 아이들처럼 입고 뛰며 아이들처럼 즐긴다.
함께 놀아주기, 학교 데려다주기 등은 엄마보다 아빠들의 몫이라 할 만큼 아버지들의 상은 정겹고 다정하다.
바구니에 담아 온 빵, 치즈, 과일이나 사과 쥬스를 나누며 소박하게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뛴다.